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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자주 국방의 기초

자주국방력(自主國防力)의 배양은 1960년대(年代) 말(末)부터 우리의 절대적인 과제로 우리 앞에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우리가 경제개발(經濟開發)에 힘썼던 60년대(年代)에 북괴(北傀)는 적화통일(赤化統一)이란 불변의 대남기본전략(對南基本戰略)아래 이른바 4대(大) 군사노선(軍事路線), 3대(大) 혁명(革命)력양(力量) 등을 표방하고 전쟁준비에 광분했으며 전쟁준비가 완료되었다고 호언하던 60년대(年代) 말(末)부터 그들은 침략적(侵略的)인 무력(武力) 도발행위(挑發行爲)를 격증 시켰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60년대(年代) 말(末)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일련의 주변정세(周邊情勢)가 우리의 자주국방(自主國防)에 대한 새로운 결의(決意)를 촉구(促求)하였다.


다시 말해 자유중국(自由中國)의 유엔축출(逐出)과 중공(中共)의 가입(加入) 그리고 미(美)중공(中共) 및 일(日)중공(中共)의 접근, 해외주둔(海外駐屯) 미군(美軍)의 철수정책(撤收政策)을 밝힌 1969년(年) 7월(月)의 「닉슨 독트린」과 이에 따른 한국(韓國), 월남(越南)등에서의 부분(部分)또는 전면(全面)철수 그리고 1975년 4월의 인지반도(印支半島)의 공산화(共産化)등 국익(國益) 지상주의(至上主義)의 새로운 국제조류(國際潮流)는 우리의 생존(生存)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부상(浮上)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고(故) 박대통령(朴大統領)께서는 북괴(北傀)의 위협에 대비(對備)해서 예비군(豫備軍), 민방위대(民防衛隊), 학도호국단(學徒護國團) 등의 민간(民間) 자위체제(自衛體制)를 단계적으로 마련 운용하는 한편 미국(美國)의 지원아래 추진되던 한국군(韓國軍) 현대화(現代化) 5개년계획(個年計劃)과는 별도로 군전력증강계획(軍戰力增强計劃)을 수립하고 국민의 방위성금(防衛誠金)과 새로 마련된 방위세(防衛稅) 등을 재원(財源)으로하여 방위산업(防衛産業)의 육성(育成)에 주력함으로써 이제는 기본병기(基本兵器)와 탄약(彈藥)은 물론 고성능(高性能) 전차(戰車), 해군(海軍) 함정(艦艇)등도 양산(量産)하게 되었고 미사일, 전자병기(電子兵器), 항공기(航空機) 등의 개발에도 많은 진전을 보기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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