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업적

자주 정신의 함량

우리가 이 「도약의 연대(年代)」에 이룩한 또다른 성과(成果)는 우리 국민의식(國民意識)속에 자주정신(自主精神)을 크게 함양한 점이다. 국민(國民)들 가슴마다 더 높아진 이 자주정신(自主精神)은 우리 세대(世代)에 기필코 민족중흥(民族中興)을 이룩하려는 시대적(時代的) 신앙(信仰)으로 승화(昇華)되었으며 이러한 자주정신(自主精神)의 고양(高揚)과 함께 의타적인 사대사상(事大思想)은 민족 주체의식 앞에 사라지고 말았다. 자기비하(自己卑下)의 열등의식을 깨끗이 청산한 우리 국민(國民)들은 민족의 무한한 저력(底力)과 자신감 속에서 내일의 번영된 조국을 내다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자주정신(自主精神)을 바탕으로 긍정적이며 합리적인 사고(思考)가 정착(定着)되고 안정(安定)과 질서(秩序)가 유지되는 가운데 비로소 사회개발(社會開發) 복지정책(福祉定策)에 정부(政府)의 관심(關心)과 투자(投資)가 모아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70년대(年代)의 성과(成果)라 하겠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경제성장(經濟成長)이 가져다 준 산물(産物)인 동시에 정부(政府)가 안보적(安保的)인 차원에서 국민단합(國民團合)을 저해하는 부조리(不條理) 퇴폐풍조(頹廢風潮)를 추방하는 서정쇄신(庶政刷新) 운동(運動)을 강력하게 추진해 왔기 대문이라고 본다.

또한 문화적(文化的)인 측면에서 볼 때 70년대(年代)는 우리 것에 대한 국민(國民)의 인식에 크게 선양(宣揚)되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국적(國籍)있는 교육(敎育)의 실시, 주체사관(主體史觀)의 확립(確立)운동, 국학개발(國學開發) 및 호국선현(護國先賢) 유적(遺蹟) 등에 중점(重點)이 모아졌던 문화재(文化財) 보수정화사업(補修淨化事業)의 확충(擴充), 정신문화(精神文化)연구원(硏究院)의 개원, 그리고 1974년(年)부터 착수된 제1차(第一次) 문예중흥(文藝中興) 5개년계획(個年計劃)의 추진 등은 문화전통(文化傳統)과 가치(價値)를 재인식(再認識)내지 선양해서 이를 국가발전(國家發展)의 정신적(精神的) 지주(支柱)로 삼으려는 우리들의 노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음을 웅변해 준다.

페이지 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