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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박정희

대추 방망이라는 별명

박정희는 보통학교에 입학한 후 1학년 2학기 때부터 급장을 했고 4학년 때 한번 2 등을 한 바 있으나 늘 1등으로 졸업을 했다.

그의 친구인 장월상(張月相)의 말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박정희는 어릴 때 몸집은 비록 작았지만 야무진 데가 있어 <대추방망이>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체구에 비해 담력이 세고 머리가 비상하여 암기력이 뛰어났었다. 학과는 산수 역사 지리 체육 등을 좋아했고 3학년 때의 학예발표회에서는 연극의 노인역을 맡아 학부형들과 선생님들을 놀라게 해준 적도 있다.」

이상의 증언에서 보는 것처럼 신체적 발육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자신의 약점을 정신력으로 극복하면서 풍부한 상상력을 키워 온 흔적이 엿보인다.


특히 집안이 가난하여 연필 공책 등을 사려고 용돈을 조르게 되면 그의 어머니는 헌 양말 같은 데 달걀 몇 개씩을 넣어주곤 했다.

박정희가 검정고무신을 처음 신어 본 것은 보통학교5학년 때이다. 그 동안 짚신만 신고 다니다가 처음으로 아버지가 사다 준 고무신을 받자 그것을 품에 꼭 껴안고 자기도 하였으며 고무신을 아끼기 위하여 학교 근처에 가서야 신기도 하였다.

그의 절약정신은 어릴 때부터 습관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밥에는 반드시 보리쌀을 섞게 했고 반찬은 세가지 이상을 놓지 못하게 했다. 점심은 대개 국수로 때웠다.

청와대에 초청을 받고 간 사람들이 잔뜩 기대를 하고 들어갔다가 점심시간에 국수 한 그릇을 대접받고 나와서는 대개 두 벌 점심을 먹어야 할 만큼 검소한 생활을 했다.

그것은 박 대통령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아무리 우리가 그 동안 경제적으로 좀 나아지고 국민소득이 향상되었다 할지라도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국민들이 많다는 생각에서 사회지도층의 사치와 낭비에 대한 경계를 잠시도 늦추지 않았다.

그가 6군단 부군단장을 하고 있을 무렵, 그곳을 방문했던 신문기자들이 그와 함께 자면서 기운 양말과 내의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았고, 팬티의 고무줄이 짧아 검정 책끈으로 이은 부분이 까맣게 물이 들어 있는 광경을 보기도 했다.


1972년 6월 5일 경제기획원에서 <한국 농촌의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때 제주도에서 목장을 경영하고 있는 외국인 신부가「대통령 각하! 한국의 송아지가 작은 것은 어릴 때 젖을 충분히 못먹고 또 농민들도 먹이를 제대로 안 주는 때문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동감이오! 내가 이렇게 작은 것도 바로 그때 문인 것 같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우유라는 고급식품을 들어보지도 못했으니까요. 우유는 고사하고 한 번 배불리 먹어본 일이 없으니 이렇게 작은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하는 말로 좌중을 웃기기도 하였으나 그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민족의 <가난>이라는 한(恨)을 풀어 주어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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