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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박정희

불의는 못 참아

대구사범 동기생들이 말을 들어보면, 박정희는 말수가 적고 눈매가 무서웠으며 규칙을 잘 지켰다고 한다. 그리고 다부진 데가 있고 특히 정의감이 강한 학생이라고 말한다.

어느 겨울날 학교운동장에서 눈치기 작업을 하는데 싸움 선수인 석광수(石光守)가 자기보다 약한 동급생의 머리를 깨진 유리병으로 찔러 피투성이를 만들었다. 이때 겁이 나서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는데 쬐그마한 박정희가 튀어나와 석광수를 호되게 꾸짖고 대신 싸움을 벌였다는 일은 동기생들 사이에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물론 그 뒤에 석광수와도 친하게 지냈다. 박정희가 장군시절 경부선(京釜線)의 하향열차(下向列車)를 타고 가다가 열차 안에서 우연히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의 상봉이었다. 식당차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박정희는 벌떡 일어나 차창 밖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나서

"석형! 저기 저 산 중턱에 우리 선영이 있오!" 하며 가리키더라는 것이다. 비록 열차를 타고 고향마을 앞을 지나면서도 선영에 참배하는 마음가짐은 박정희의 신앙이기도 하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조상을 섬기고 부모를 받들며 어른에게 공경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석광수는 또 박정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증언을 기록으로 남겼다.

「박정희는 말이 없고 항상 성낸 사람과 같이 웃음을 모르고 혼자 사색하는 듯한 태도가 인상 깊다. 동기생 중 누구와 가장 친하게 지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대구사범 출신은 공통적인 형(形)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정직하다든지, 사교성이 없다든지 등등, 수학여행은 2학년때 경주, 3학년 때 금강산, 4학년 때 만주, 5학년 때 일본으로 갔다.

얼마나 규율이 엄한지 여학생과 연애하다가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동기생들은 나이가 4~5세나 차이가 있었다. 재학중 결혼하여 자녀를 가진 동기생들도 십여 명 있었다.

박정희는 5학년 때 검도을 시작했으므로 크게 기술이 있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권투는 기숙사에서 그저 연습을 했을 정도이지 도장에는 나가지 않았다. 축구도 잘했고 주로 자신의 심심연마에 노력했다.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이상의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박정희는 대구사범 시절에 교련을 좋아했고 기계체조, 사격, 검도, 축구 등의 운동을 좋아했는가 하면 또 나팔을 부는 것이 취미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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