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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민족 중흥관

생가에서의 유년기

- 박대통령이 직접 쓴 자서록 <나의 소년시절>中에서-

우리 집은 원래 조부대(祖父代)까지 성주(星州)철산이란 고장에서 살다가 아버지가 약목 수원백씨 문중으로 장가 와서 어머니와 결혼을 하게 된 후 약목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약목에서도 여러 곳에 이사를 다녔던 모양인데 어릴 때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친께서는 소시에 무과과거에 합격하여 효력부위(效力副尉)란 벼슬까지 받은 바 있으나 원래 성격이 호방한 데다가 당시 조선조 말엽척도정치(戚道政治)와 부패정치에 환멸도 느끼고 반항도하여 20대에는 동학혁명에도 가담하였다가 체포되어 처형 직전에 천운으로 사면되어 구명을 하였다고 한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가끔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때 아버지가 처형되었더라면 너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는 옛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으나 그때는 어리고 철이 없어서 그 이야기 내용을 잘 못알아들었고 또 자세히 물어보지도 못했다. 동학란(東學亂)이 1895년경이니까 선친께서 나이가 22~23세경이라고 짐작이 된다.

점심때가 훨씬 넘었으니 시장도 하지만 보리가 절반 이상 섞인 밥에 비름나물과 참기름을 놓고 비빈 맛은 잊을 수 없는 별미다. 나는 요즈음도 가끔 내자에게 부탁하여 비름나물을 사다가 비빔밥을 만들어 먹어 보곤 한다.

엄동의 추운 겨울에는 저녁을 먹고 나면 가족들이 한 방에 모인다. 세상사 여러 가지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아버지와 형들이 한 방에 모여 있으니 아버지가 계신고로 형들은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아버지께서 눈치를 알아차리시고 슬그머니 사랑방으로 내려가신다. 형들에게 담배를 마음대로 피우도록 자리를 비워주는 셈이다.

밤이 늦어지면 이야기도 한물 가고 모두들 밤참 생각이 난다. 어머니께서 홍시나 곶감을 내어놓으실 때도 있고 때로는 저녁에 먹다 남은 밥에다가 지하에 묻어둔 배추김치를 가져와서 김치를 손으로 짖어서 밥에 걸쳐서 먹기도 한다. 이것이 시골 농촌의 겨울밤의 간식이다. 가끔은 묵을 내는 때도 있다.

칠곡군 약목에 계시는 외삼촌이 가끔 오신다. 어머니의 바로 아래 남동생이다. 한학자(漢學者)이며 약목에서 서당을 차려놓고 동리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쳤다. 아버지와는 처남매부간이라 유달리 다정하면서도 두 분이 다 고집이 센 분이라 옛날 이야기하다가 때로는 서로 언쟁을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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