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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박정희

금오산의 정기

상모리는 서북쪽에 금오산(金烏山)을 등지고 멀리 동쪽으로 낙동강을 바라보는 지대가 좀 높은 듯한 그런 마을이다.

우리 나라에는 이름난 산이 많지만 금오산도 그 중의 하나이다. 소백산맥의 큰 줄기가 대덕산에서 세 줄기로 나누어지는데 그 한 줄기는 덕유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뻗고, 또 한 줄기는 가야산으로 연결된다. 나머지 한 줄기는 부상산을 거쳐 선산 남쪽에 봉우리를 우뚝 세우니 그것 이 곧 금오산이다.

산 전체가 옹골찬 바위로 이루어져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많아 명산의 기재가 서리어 있다. 기암괴석이 늘어선 가운데 곳곳에서 물이 솟아나기 때문에 산 중턱의 대혜폭포는 천하의 승경이다.

옛부터「조선인물의 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인물의 반은 선산에서 난다」는 말이 있다. 그리 치면 조선인물의 4분의 1이 선산에서 난다는 말인데 선산에서 인재가 많이 난다는 뜻일 것이다. 조선시대의 대학자인 장현광(張顯光)도 「영남의 한복판에 위치한 선산군은 산수가 어울어져 기세가 화합하고 정기의 맑음이 모여 대대로 뛰어난 인물이 났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선산은 문화의 고장임이 틀림없다. 한국불교의 발상지이자 신라불교의 성지인 도리사(桃梨寺)가 여기에 있고 한국유교(韓國儒敎)의 본고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라시대의 설총(薛聰) 최치원(崔致遠), 고려시대의 안향(安珦) 정몽주(鄭夢周) 길재(吉再), 조선시대의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이황(二滉) 조식(曺植) 등으로 이어지는 영남사림학파의 씨를 뿌려준 사람이 바로 길재(吉再)이다.

선산은 길재뿐만 아니라 하위지(河緯地) 정붕(鄭鵬)같은 선비를 배출한 곳이며, 고려태조 왕건(王建)이 견훤(甄萱)을 무찌르고 후삼국통일을 이룩하는 데 결전장이 되었던 고장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금오산과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선산에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도 많다. 대륙성 기후 탓인지 여름에는 천둥 번개가 많고 무더우며, 겨울에는 매서운 모래바람이 살을 에일 듯 추운 고장이다.


긴긴 겨울밤이면 어린 박정희도 다른 아이들처럼 어머니로부터 <소무덤> <개무덤> 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삼동을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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