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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박희광선생 동상

기본정보
    • 시설명 : 애국지사 박희광선생 동상
    • 주제 : 독립운동
    • 종류 : 동상
    • 주제분류 : 의열투쟁
    • 소재지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251-1(금오산 도립공원입구)
    • 건립 : ‘84년 제막
    • 사업비 : 251백만원
    • 규모 : 높이 약5.7m (기단 3.0m 동상 2.7m)
    •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 관리자 : 구미시(금오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
    • 사건연도 : 1905년
    • 시설건립일 : 1984-03-01


동상보수사업
  • 사업기간 : ‘11. 7 ~ 11월
  • 사업비 : 290백만원(도200, 시90)
  • 사업주체 : 애국지사 박희광선생 동상보수사업추진위원회 - 위원 11명(호국보훈단체 대표 10명, 유족 1명)
  • 사업내용 : 동상보수, 기단 원석교체, 인물군상․태극문양 등
건립취지
    시설 내용
  • 박희광은 항일 의병운동가인 윤하공의 다섯째 아들로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서 태어났다. 1912년 항일 의병활동으로 인해 일본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되자 부친을 따라 만주로 건너갔다.
    18세 되던 해인 1922년 그는 만주에서 결성한 임시정부 무장독립운동단체인 대한통의부에 자진 입대하여, 특공대원으로써 활약하였다. 1924년 박희광은 임시정부로 부터 만철연선의 친일파를 토벌 하라는 특명을 받고, 김광추, 김병현 등과 3인조 암살 특공대를 결성하여 이들의 숙청작업을 하였다. 1924년 6월 1일에는 무순방면의 고등계 첩자이며 여순조선인회 서기인 악질 친일파 정갑주와 가족을 현장에서 사살하였다. 1924년 6월 7일 대낮에는 보민회를 습격하여 친일파 거두 최정규를 암살하려 하였으나 최정규가 미리 피신하여 그의 부하 허 윤과 가족을 사살하였다. 1924년 7월 22일에는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지급받은 폭탄을 봉천 일본총영사관에 투척하였으나 불발로 실패했다. 같은날 저녁에 일본 고관들이 출입하는 고급요정인 금정관에 침입하여, 거액 군자금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잠복한 중국, 일본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김병현과 체포되었다.
    박희광은 1924년 대련지방법원에서 1심에 사형을 받았으나, 1927년 여순고등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형이 확정되어 여순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일본천황 즉위 때와 황태자 출생 때에 감형되어, 20년을 복역한 1943년 43세의 나이로 출옥하였다. 그 후, 대련에서 동지 이성갑, 유하도와 함께 중국 충칭으로 옮겨간 임시정부에 합류하기로 하였으나, 일본 경찰의 주목과 감시를 피해다니다 임시정부에 합류하지 못한채 1945년 만주에서 광복을 맞았다.
관련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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