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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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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역사 고려시대

선주, 일선현 등으로 불림

936년 (태조 19) 양국의 군대가 이곳 일리천(一利川: 지금의 선산읍 동쪽)에서 최후의 격전을 벌여, 여기서 승리한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그 뒤 지방제도의 정비에 따라 숭선군은 995년 (성종 14) 선주(善州)로 개편되어, 현재의 구미시 선기동에 치소(治所)를 두고 자사가 임명되었다가 1018년 (현종 9) 상주의 속주가 되었다.

1143년 (인종 21) 일선현으로 강등되었으나, 지선주사(知善州事)로 다시 승격되었다. 인동현은 1018년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어 고려말까지 계속 유지되어오다가, 1390년 (공양왕 2) 감무가 설치되어 독립행정단위를 구성하게 되었다. 한편, 1235년 (고종 22) 이유정(李裕貞)이 군대를 이끌고 이곳에서 몽고군과 싸우다가 크게 패하였고, 1380년 (우왕 6) 이후에는 왜구의 빈번한 침입으로 크게 황폐화되었다. 그 뒤 선주읍성과 금오산성이 축조되어, 왜구의 방어와 토벌이 이루어져 백성들이 안주하게 되었다.

의의

후삼국통일(後三國統一)의 시발점(始發點)

고려 태조왕건이 견훤의 아들 신검이 이끄는 후백제 군사와 최후의 결전을 치룬 곳이 지금의 고아읍과 지산동 일대로 이 지역 전투에서 승리한 왕건은 삼국을 재통일하여 이후 500년 고려왕조의 기틀을 다진 역사적인 현장으로

우리 지역에는 아직도 그때의 전투와 관련된 지명의 흔적과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음.

  • 발갱이 들(발검들) : 지금의 고아읍 송림리 및 지산동 앞들로 신검이 고려군에 패해 항복한 곳
  • 어갱이 들(어검들) : 지금의 고아읍 관심리 앞들
  • 점갱이 들(점검들) : 지금의 고아읍 괴평리 앞들로 고려군이 신검의 진지를 점령했다하여 붙여진 이름
  • 숭신산성 : 왕건이 해평면 송곡리 냉산(도리사 뒷산)에 후백제군과 싸우기 위해 쌓은 산성으로 아직도 흔적이 남이 있고, 산성 아래의 낙산리 일대에 군창(보급창)을 일곱 개나 짓고 전쟁을 준비하여 이 마을은 아직까지 칠창리로 불리고 있음.
  • 여진(여진) : 지금의 해평면 낙산리 일대의 낙동강 나루로 왕건이 "저 나루는 모두 나의 나루이니라" 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음.

※ 이 밖에도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어성정(왕건이 군영을 설치한 곳), 태조방천(왕건이 축조한 낙동강 제방) 등의 지명이 전해지고 있음.

길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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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예술과   박은진   054-480-6642
최종 수정일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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