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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발상지로 신라 고려
1500여년 정신문화의 큰 맥을 이룬 곳!

도리사석탑(보물 제470호)신라 미추왕(262-283) 또는 눌지왕(417-457)때 묵호자 또는 아도가 고구려로부터 신라에 숨어 들어와 일선군 지금의 선산 모례라는 사람 집에 숨어 불교를 전파했다고 삼국사기등에 기록되어 있으며 삼국유사와는 약간의 년대 차이와 내용을 달리하고 있으나 고구려 사람 아도 또는 묵호자가 선산 모례라는 큰 부자집에 와서 7년간 머슴살이를 했으며 굴속에서 기거를 하면서 양 천마리와 소 천마리를 혼자서 거뜬히 쳤다하며 지금도 도개동 건너 남쪽산이 냉산 뒷등이 되는데 [양천골], [소천골]이라 불려지는 두개의 골짜기가 있다.

아도가 떠날 때 모례가 섭섭하여 “세공도 한 푼 못주었는데 어찌하나” 하고 물으니 “얼마 후에 당신네 창가에 칡순이 내려 올 것이니 그 칡을 따라오면 곧 나를 만날 것이다.”하고 떠났다.

과연 얼마후 엄동설한에 창가에 칡순이 돋는지라 그 칡을 따라가니 냉산 중턱 지금의 도리사터였다. 하며 아도는 모례에게 “나 여기에 절을 지을 것이니 시주좀 하시오”하고 바리대(나무로 만든 중들의 밥그릇)를 내놓아 돈을 한 꾸러미 바리대에 담았으나 반 밖에 차지 않아 곡식이라도 더 주 겠다기에 오쟁이(짚으로 만든 작은 섬)를 내놓아 한말 두말 아무리 곡식을 넣어도 오쟁이는 차지않아 결국에는 창고의 곡식이 다 들어갔다 하며 그 곡식이 천석이나 되었다 하는데 그걸로 도리사를 지었다 하며 눈속에 복숭아와 오얏꽃이 만발했다 해서 도리사라 한다 하고 도개라는 마을도 불교가 발상하여 도(道)가 열렸다(開)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후로도 모례는 더 부자가 되는 길이 없느냐고 승려를 붙잡고 물으니 중이 이르기를 “지형이 배 모양 같으니 큰 비석을 셋 세워 돛을 달면 큰 부자가 될 것”이라 했더니 오히려 가세가 기울어 망하고 지금은 [모례장자터][모례장자샘][비석세개][양천골][소천골]등 그때의 유물유적만이 있어 선산군에서는 다시 복원하여 성역화하고 불교발상지답게 다시 정화하였다.

도리사는 1977년 사리탑 복원공사때 6각 금동탑을 발견했고 그 안에서 세존진신사리 한점을 발견하여 사리탑을 새로 만들어 봉안하였으며 도리사와 모례장자터등으로 일연하여 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대소불사가 계속되고 있다.

당시 신라사람들은 승려 신도 할 것 없이 불교의 요람인 이곳을 순례했고 주변에 대소의 많은 사원을 세우고 불도가 넓게 포교되어 점차 경주로 포교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선산읍 죽장동에 국보 제130호인 [오층석탑]이 있고 해평면 낙산동에 [삼층석탑]이 보물 제469호이고 도리사 [화엄석탑]이 보물 제470호요 해평면 해평동의 [석조여래좌상]이 보물 제492호이며 도개면 궁기동의 [석불상]등 이외 산재한 불교유물이 부지기수이며 대소 사찰도 다 열거할 수 없지만 옥성면 태봉동에 전체가 [덕익사]의 유지라고 하는데 고려사에 의하면 왜구가 거창, 합천에 들어오니 해인사에 보관하던 역대 실록 및 경사와 책을 선산의 덕익사로 옮겼다라고 되어 있고 문종실록에는 대장경 3800권을 내려 보관시켰다 했으니 큰 가람이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금오산 안에도 10여 사찰이 있어 아침 저녁 예불시간에는 목탁 독경 소리가 산을 진동했다하며 칠곡군 북삼면 숭오동의 [대각사]는 금오산 기슭에 있으나 행정상 칠곡일뿐이며 고려 문종의 아들이 수도하여 훗날 대각국사가 된 절이기도 하고 [금오산마애보살입상]은 보물 490호 [황상동마애여래입상]은 지방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어 이고장이 불교발상지로 신라 고려 1500여년의 정신문화의 큰 맥을 이룬 곳이라 추측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구미문화원 유학의 고장 구미의 영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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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오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   조성호   054-480-4605
최종 수정일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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