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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의 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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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의 축조(築造)

금오산성은 고려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성지(古城址)이다. 조선 중종시대(中宗朝)의 기록에 의하면 금오산은 고려 때에는 남숭산이라 불리었고, 선산부의 남쪽 43리에 위치하여 서쪽은 개령 동쪽은 인동, 북쪽은 부(府)의 경계에 있다고 하였다.

금오산성은 석축의 둘레가 7644자(尺), 높이가 7자이고, 그 절반 이상이 암벽으로 이루어져 몹시 험준하고 고려말에 선산, 개령, 인동, 성주 등의 많은 백성들이 왜구를 피하여 이곳에 들어와 살았으며 군사를 징발하여 이를 수비했다고 하니 고려말에 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에는 군창(軍倉)이 있었던 사실도 알 수가 있다.

신동국여지 승람 29권 (新增東國輿地勝覽) 卷29

조선 태종 10년(1410) 3월에 경상도와 전라도의 산성을 수축(修築)한 바가 있는데 수축된 12산성 중 창녕의 화왕, 청도의 조악, 경주의 부산성 등과 함께 선주의 금오산성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 고려시대의 성터가 상당 부분 잔존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페이지 담당자
  • 금오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   조성호   054-480-4605
최종 수정일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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