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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의 별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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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칭 1남숭산(南嵩山) - 중국의 오악(五嶽)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는데 고려시대에는 남숭산(南嵩山)이라 하였다.

    그 유래는 중국의 황하강 유역 하남성(河南省)에 중국 오악(五嶽) 중의 하나로 유명한 숭산(嵩山)과 생김새가 흡사하여 남숭산이라 명명하였고, 남쪽에 있다 해서 남숭산이라 부른 것이다. 특히 황해도 해주에 북숭산을 두어 남북으로 대칭(對稱)케 되었다.

    고려시대 문종(文宗)은 왕자를 출가시켜 이 남숭산에서 수도(修道)하게 하였는데, 그 왕자는 훗날 대각국사(大覺國師)로 봉해져 호국불교의 포교와 국정 자문에 임하였으니 남숭산의 품격과 위상이 역사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금오산은 1,000m를 넘지 않는 산이지만 굳이 숭자(嵩字)를 붙여 중국의 유명한 숭산에 비겨 말하는 것은 이처럼 그 위용(偉容)과 품격이 비범한 데서 기인되었다고 여겨진다.

  • 별칭 2소금강(小金剛)과 수양산(首陽山)

    금오산은 암석으로 골짜기마다 남성적인 기상이 넘치는 기암괴석(奇岩怪石)으로 힘과 기백(氣魄)이 서려 있고, 빼어난 경관을 갖추고 있어 옛 선현(先賢)들은 소금강(小金剛)이라고 불렀다.

    또한 중국의 수양산에서 고사리로 연명하다 굶어 죽은 백이숙제(伯夷叔齊)이야기와 야은(冶隱) 길재(吉再)선생의 충절을 기려 수양산(首陽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칠곡군 숭산리의 순국의사(殉國義士) 만송(晩松) 유병헌(劉秉憲)선생의 문집에 따르면 "선비들이 다 사모하는 수양산 기슭에다 내 시신을 묻어다오" 라고 유언(遺言)을 할 정도로 선비들 사이에서는 수양산으로도 통용(通用)되어 왔다고 전한다.

  • 별칭 3필봉(筆峯)

    선산 방면에서 보면

    상봉(上峯)이 흡사 붓끝 같다고 해서 필봉(筆峯)이라 하였는데 그로 인해서인지 선산지방에는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문인(文人), 달사(達士), 명필(名筆)이 대(代)를 끊이지 않았다.

    조선조 성종(成宗)때의 문신 성현(成俔)은 그의 저서 용재총화에 "조선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朝鮮人材 半在 嶺南이요 嶺南人材 半在 善山)"라 하였고, 그 후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서도 그와 같이 언급되었으니 이는 모두 금오산 정기(精氣)의 영험(靈驗)이라는 평가도 있다.

  • 별칭 4귀봉(貴峯) 거인산(巨人山)

    구미시 인동 방면에서 보면

    부처님이 누워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와불산(臥佛山)이라고하여 귀인과 대작(大爵)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귀인이 관(冠)을 쓰고 있는 모습 같다 해서 귀봉(貴峯)이라 칭하기도 하였고,

    또한 마치 거인이 누워 있는 모습같다고 해서 거인산(巨人山)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 별칭 5노적봉(露積峯)

    김천방면에서 보면

    부잣집 노적가리 같다고 해서 노적봉(露積峯)이라 하였는데 실제로 옛부터 이 지방에는 큰 부자(富者)가 많았다.

  • 별칭 6적봉(賊峯) 등 그 외의 별칭

    김천시 개령면 방면에서 보면

    큰 도둑이 무엇을 훔치려고 숨어서 노려보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적봉(賊峯)이라 하였으며,

    성주군 방면에서 보면

    여인네가 산발한 모습 같다고 해서 음봉(淫峯)이라 하였다. 이런 많은 별칭들은 금오산의 위용(威容)과 준엄(峻嚴)한 자태에 대한 선인(先人)들의 애정이 담겨진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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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오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   조성호   054-480-4605
최종 수정일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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