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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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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마을 운동
  • 70년대의 회고

반만년(半萬年)의 유구(悠久)한 역사(歷史)를 이어온 우리에게 있어서 지난 70년대(年代)는 지극히 짧은 기간(期間)이었지만 이 10년간(年間)에 우리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국력(國力)의 신장(伸張)과 충만한 근대화(近代化)의 열기로 우리의 조상(祖上)들이 수 백년(數百年)을 두고도 이루지 못했던 민족번영의 기틀을 성공적(成功的)으로 다져 나왔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자신(自信)과 의욕(意慾)속에 근면, 자조, 협동으로 가능의 변수(變數)를 넓혀가고 있다. 빈곤(貧困)과 정체(停滯)의 그늘에서 벗어나 풍요(豊饒)와 진취(進取)의 새 기운(氣運)속에 땀흘려 일하고 또 일하여 왔다.

새마을사업에 동원된 우차, 잠시의 휴식돌이켜 보면 우리가 걸어온 지난 70년대(年代)는 결코 순탄(順坦)하지 만은 아니 하였다. 좁은 국토(國土)에 많은인구(人口)를 가지고 있는 데다 부존자원(賦存資源)마저 넉넉지 못한 여건 하에서 세계적인 유류파동(油類波動)과 자국이익(自國利益)보호를 우선하는 국제경제(國際經濟) 질서(秩序)는 우리 경제(經濟)를 크게 위협하였으며 설상가상으로 풍수해, 한발 등 자연(自然)으로부터의 시련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좌절하지 않았으며 물러서지 않았다. 농촌(農村)과 도시(都市), 직장(職場)과 공장(工場), 산(山)과 바다, 그리고 먼 이역(異域)의 하늘아래서 온 국민(國民)이 뜻을 모아 이를 극복하는데 슬기와 힘을 다했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신념(信念)과 의지(意志)로 숱한 고난을 딛고 일어나 이 70년대(年代)에 국민소득(國民所得) 1,000불(弗), 수출(輸出) 100억불(億弗)의 꿈을 앞당겨 성취(成就)하였으며 자주국방(自主國防) 태세(態勢)의 확립(確立)과 자주정신(自主精神)의 계발(啓發)을 통하여 격조(格調)높은 정신문화(精神文化)를 꽃피우면서 극동(極東)의 주변국가(周邊國家)에서 태평양국가(太平洋國家)로 발돋움하였다.

초기단계(初期段階) 농촌(農村)에서 시작된 새마을운동(運動)은 지난 10년(年)동안 농촌과 도시, 가정과 직장, 그리고 공장과 학교 등 모든 분야에 확산 발전되어 국가발전(國家發展)의 원동력(原動力)으로서 민족중흥(民族中興)의 활력소(活力素)가 되어왔다. 그리하여 이 땅에 새로운 논리(論理)와 올바른 가치관(價値觀)을 정착시키면서 민족사(民族史)의 진군(進軍)을 이끌어 가는 거대한 동력(動力)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돌이켜 보면 새마을 운동(運動)은 1970년(年) 4월(月) 22일(日) 고(故) 박정희(朴正熙) 대통령(大統領)께서 제창하신 이래(以來) 3단계의 발전과정(發展渦程)을 거쳐왔다. 71년부터 73년(年)까지의 기반조성(基盤造成) 단계(段階)에서는 새마을 가꾸기와 지붕개량 등 기초적인 환경(環境) 개선사업(改善事業)을 통하여 새마을의 실천의지(實踐意志)를 자극 점화하였으며, 자조발전(自助發展) 단계(段階)였던 74년(年)부터 76년(年)까지는 농촌(農村)은 물론 도시와 공장에서도 도시(都市) 새마을 운동(運動)으로 발전(發展)되었고 77년(年)부터는 자립(自立)에서 완성(完成)의 단계(段階)로서 살기좋은 복지문화(福祉文化) 농촌(農村)의 건설과 건전(健全)한 국민질서 확립으로 다가올 고도(高度) 산업사회(産業社會)에 부응(副應)하여 인정과 의리가 넘치는 풍요로운 사회 건설은 위한 범국민운동(汎國民運動)으로 승화시켜 나가고 있다.

새마을운동

70년대(年代)를 마지막 보내는 지난 1년(年) 동안 우리는 숱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두 차례에 걸쳐 전국을 휩쓴 수해(水害)와 국제(國際)에너지 파동(波動)으로인한 물가고(物價高), 그리고 졸지에 당한 영도자(領導者)의 서거(逝去)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슬기와 단결로 이를 이겨내고 무려 178만건(萬件)에 달하는 각종 새마을사업(事業)을 알차게 추진하였으며 수출(輸出) 155억불(億弗)의 목표달성, 3천(千)8백(百)만석(萬石)이 넘는 쌀 생산(生産)을 이룩하였을 뿐 아니라 각계(各界) 각층(各層) 전국민(全國民)이 소비절약과 자연보호 그리고 수재민(水災民)돕기 등에 솔선 참여하여 70년대(年代)의 마지막 해를 알차게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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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담당자
  • 문화관광담당관   송상민   054-480-6634
최종 수정일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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