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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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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가∙민족 중흥관
  • 박정희 생가
  • 생가 안내
이 집은 대한민국 제5대에서 제9대까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1917~1979)가 태어나서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생가 내에는 안채 및 사랑채와 1979년에 설치한 분향소가 있다. 건립 당시 안채는 초가였으나 1964년 현재의 모습으로 개조되었다.
생가 : (왼쪽부터 차례로)분향소, 박대통령께서 거쳐하시던 초가집, 안채

박정희대통령은 고령 박씨 29세손으로 그의 선조는 고령에서 성주로 이거하였다가 1914년 현 위치인 상모동으로 이사하였다.

박정희대통령 생가를 대지, 건물, 문화재지정, 설명으로 나타낸 표 입니다.
대 지754㎡
건 물초가(사랑) 58㎡, 분향소 119㎡, 관리사(안채) 114㎡
문화재 지정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1993년 2월 25일)
설명초가는 방 2칸, 부엌1, 디딜방아간, 마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박대통령께서 태어났다.
과거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건물이다.

원래 생가의 모습에 대한 기억은 다음과 같다. 메주 뜨는 냄새와 서까래가 보이는 천장에 파리똥이 새까맣게 앉은 황토 벽으로 된 방에는 신문지 한 장도 바르지 않았다. 장대 두 개로 시렁을 지르고 그 위에 세간을 차려 놓고 사는 전형적인 한국 농촌의 토방(土房) 속에서 태어났다.
(정재경 1992 {위인 박정희} 집문당 35쪽)

움푹하게 패인 대지에 동쪽만 제외하고 사방이 대나무와 탱자나무 숲으로 빙 둘러쳐진 곳이어서 담을 쌓을 필요가 거의 없다. … 여기서 박성빈은 온 가족과 함께 황토 흙을 이겨서 흙벽돌을 만들고 안채와 사랑채인 두 초가를 지었다. 안채는 북향. 정면에 있는 언덕과 대나무 숲이 바람막이 역할을 하도록 방향을 잡은 것이다. 박정희가 쓴 [나의 소년 시절]에는 '이 집은 6·25동란 당시까지도 옛 모습 그대로였으나 6·25 때 파괴된 것을 사랑채만 옛 모습으로 복구하고 안채는 초가로 가건물을 백형이 지었다가 5·16 후 지금 있는 안채를 다시 건립하였다. 지금 있는 사랑채 큰 방은 내가 이 세상에 처음으로 고고의 소리를 내면서 태어난 산실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원래의 안채는 一자 모양으로 부엌과 방 두개 사이로 마루방이 하나 있었다. 박정희가 태어난 사랑채에도 방이 둘이었다. 그의 산실인 큰방은 2×3m 크기로서 부엌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 사랑채 작은 방에는 정희가 상희 형에게서 물려받은 앉은뱅이 책상 하나가 지금도 놓여 있다. 가로 88cm, 세로 53cm 정도인데 서랍이 두개 달려 있다. 박정희가 태어난 사랑채에는 외양간과 함께 소여물을 끓이는 큰 가마솥이 걸렸던 부엌이 있다. 이 부엌의 한쪽 벽을 따라서 디딜방아가 놓여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우물이 있고 그 옆에 통시가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가구들을 가지고 추정하면 이 집안의 재산 목록은 장롱 하나, 놋쇠 화로 하나, 탈곡기 한대, 가마솥 몇 개, 밥상과 소반 몇 개, 숯불 다리미, 호롱불 등잔 서너개, 앉은뱅이 책상 하나, 식기와 옷가지들, 그리고 언문소설을 읽는데 썼던 백남의의 돋보기 하나, 가축으로는 닭이 대여섯 마리, 황소 한 마리, 박성빈 일가가 약목에서 이사 올 때 가져온 가구는 황소 한 마리의 등에 다 실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조갑제 1998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1권 조선일보사 336-338쪽)

아래채(사진)

경북 구미시 상모리에 있던 박정희대통령의 생가. 66년에 찍은 당시 생가는 워낙 가난했던 탓인지 나무기둥도 없이 쌓아 올린 흙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하다.

왼쪽 처마 밑에 나란히 매달린 것은 풀어놓은 닭들이 알을 낳도록 만든 둥지. 현재 생가는 구미시가 새로 단장해 깔끔한 초가집으로 바뀌었다.(중앙일보 1997. 4.)

  • 예전아래채
  • 현재아래채

생가 입구와 아래채 일부(사진)

큰형 박동희(朴東熙)의 모습

박정희(朴正熙)가 태어난 생가 옆으로 풀짐을 나르는 큰형 박동희(朴東熙)의 모습. 허리를 굽히고 있어 상대적으로 짐이 크게 보인다. 처마 밑에 주렁주렁 달린 가마니는 닭들이 알을 낳던 [닭집]이었다. 사진 우측에 살짝 보이는 방문이 박정희가 쓰던 공부방. 사립문 뒤로 보이는 초가지붕은 박정희의 둘째형 박무희(朴武熙)와 그의 장남 박재석(朴在錫)이 살던 집이다. (조갑제 1998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1권 347쪽)

제보자

  • 한성도 씨(82세), 상모동 거주 (☎ 461-5787)
  • 배성배 씨(75세)와 부인, 상모동 생가 앞 거주
  • 전병억 생가보존회장
  • 백남선, 백주기, 백보현 등(수원 백씨 산음공파)

배치

  • 몸채 1동
  • 아래채 1동 - 현존, 사진 참고
  • 변소 1동 - 입구, 잿간과 함께
  • 우물 1개소 - 현존, 깊이 3-4질 (돌출부 없고 돌 2개 배치)

윗 채

  • 형태 : 一자형 초가, 기둥이 없는 담집
  • 규모 : 아래채 보다 조금 큼
  • 구성 : 방 2(큰방1(11-12자 정도로 큰 편), 작은방1), 부엌 1
  • 기단 : 높이 한자 반정도, 방문 앞 댓돌
  • 외장 : 방문 2, 부엌문
    • 방문 : 외짝 바라지, 대나무 살대, 창호지
    • 부엌문 : 통나무 널문 양짝
  • 내장
    • 방 : 실겅, 바닥(삿자리), 벽(새벽)
    • 천장 : 연등, 산자(삼대)

생가 방문객 현황

박정희대통령생가 방문객 현황을 연도, 방문객(명), 비고로 나타낸 표 입니다.
연도방문객(명)비 고
1995년 29,580  
1996년 42,750  
1997년 100,930  
1998년 130,770  
1999년 187,930  
2000년 284,200  
2001년 340,700  
2002년 358,800  
2003년 395,900  
2004년 447,250  
2005년 466,940  
2006년 460,250  
2007년 473,500  
2008년 485,800  
2009년 519,500 전국새마을박람회
2010년 520,670  
2011년 525,460 박대통령 동상제막
2012년 554,310 18대대통령선거
2013년 782,600 민족중흥관 개관
2014년 690,660  
2015년 519,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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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관광담당관   송상민   054-480-6634
최종 수정일
201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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