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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례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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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례가정

    신라불교초전기념관 들어가기 전 왼편에 조용히 홀로 모례의 우물이 향나무와 나란히 앉아 있다.

    이 우물은 고구려에서 신라에 불교를 전하기 위해 들어 온 아도화상이 머물렀다는 모례장자의 집에 있던 유적이다. 일선군의 큰 부자이던 모례장자의 집에 숨어 살며 포교활동을 하던 곳으로 도리사와 함께 신라불교의 성지이다. 고구려 아도가 신라로 들어와서 일선(선산)의 모례장자의 집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 나와있는 ‘신사모례가(信士毛禮家)’란 말은 그의 신분을 표시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아도가 모례 집에 고용되어 매일 소 백마리를 방목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모례는 장자(長者)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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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례정
  • 아도가 신라의 한 지방(선산)에 와서 처음 포교(布敎)를 하려고 할 때 어느 정도 재력(財力)과 권력(權力)을 가진 집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두 세기를 걸쳐 전도승(傳道僧)이 모례네 집에 왔음을 볼 때, 모례지가(毛禮之家)는 이미 사원화(寺院化) 되었거나 전도승(傳道僧)들의 성지(聖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우물은 둥근 모습을 한 것에 비해 모례가정은 직사각형의 돌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짜고 밑바닥에 두꺼운 나무판자를 깔았다. 동네 어르신의 전하는 말로는 이 우물 맛이 어느 우물보다 맛이 좋았다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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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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